2023.12.02 (토)
 
기사검색
 
이달의 문화포스팅
박운기의‘ 기운 팍 서대문’ 동네방네이야기
홍제천의 봄
쉬어가는 수필
기고
축사
기자수첩
법률칼럼
쓴소리 단소리
풀뿌리참여봉사단
Dental Clinic
> 칼럼/홍제천의 봄 > 홍제천의 봄
2007년 08월 23일 (목) 16:21 [제 400 호]
홍제천의 봄(41)/모래내 有感 1

가좌(加佐)지명 한자 억지 전음에서 비롯된 오기
가장자리 마을 ‘가재울’ 순수토박이 우리말 그리워
△著者 우 원 상
△모래내시장을 길 하나 사이에 두고 억지스러운 한역 이름으로 지어진 가좌역은 지명유래도 없이 명맥을 유지해 가고 있다. 최근 마포구 주민들이 가좌역의 명칭을 성산역으로 바꾸겠다는 움직임까지 있어 더욱 안타까움이 크다. 차라리 모래내역이라고 개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옛날을 그리워하는 모래내(홍제천∼11.95㎞)는 북한산(삼각산) 깊은 골짜기마다 샘솟아 굽이굽이 여울지어 서리어진 전설을 밤마다 노래로 엮어 흘려보내던 낭만도 멈춘지 오래다.
하얀 모래맡을 흐르며 속삭이던 별들과의 대화도 끊기고, 저녁 노을 수놓은 환상적인 화폭(畵幅)위에 스며들던 목동의 노랫소리도 들리지 않고 냇물에 잠긴 달을 어루만지며 잔잔히 흐르던 황홀한 자장가도 아득한 추억 속으로 묻혀 버렸다.

과거를 체념한 이제, 철없는 아이들의 고무풍선인 양 부푼 서울-그 품안에 안긴 설레임으로 모래내 마을일랑 새로운 도시의 꿈을 잉태해야만 했다.
예나 다름없이 모래내 철다리를 건너간 경의선(京義線)철길은 곧게 뻗어 있건만 남과 북을 잇는 신경줄(神經線)의 기능을 되살리는 묘방은 과반세기나 기다리다 지쳐서 길게 늘어져 있다.
경의선의 종착역이 평양을 거쳐 압록강변 신의주련만 새들만 넘나드는 휴전선이 가로막혀 남북통일의 길은 아직도 요원한 소원일뿐…. 고작해야 이 철길을 달리는 열차는 겨우 엎드리면 코 닿을 곳인 문산까지만 오고가는 단거리 선수가 되었다.

하루속히 통일조국의 마라톤 선수가 되어다오! 이것은 모래내의 바람이요, 우리 모두의 바람이다.
이 모래내는 이름 자체만으로도 향토적인 낭만성을 지닌 내였으나 오늘의 모래내는 내 이름만이 아닌 복잡한 서울의 서부도시 이름으로 변했다.
그것도 법정(法定)이나 행정상 땅이름이 아닌 민요같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자연스레 부르게 된 지역이름이다.

모래내시장 및 가좌역을 중심으로 남가좌동, 북가좌동, 연희동, 연남동, 성산동 등 여러 동네 일부를 포괄해 싸안은 보재기 같은 지역구 이름이 되었다.
나는 모래내 남가좌동에 살면서도 가좌동(加佐洞)이나 가좌역이란 한자이름이 마음에 안 들어 항상 불만이다.

그런데도 이 「가좌」라는 땅이름은 모래내 지역 말고도 전국 여러 곳에 산재해 있으니 어쩌랴. 여기에서 멀지 않은 고양시에도 있고 인천시에는 가좌동이 1,2,3,4동으로 나누어져 있음을 본다.
이 가좌라는 한자이름이 붙게 된 연유를 살펴보면 「가재울(가장자리 마을, 변두리 마을의 뜻)」이라는 순수한 우리 토박이 말을 한자로 억지 전음 하다 보니 가좌(加佐)라고 뜻도 모르는 땅이름이 되었다.

다른 한 예를 더 든다면 석관동(石串洞∼서울 성북구)하면 돌석(石)자를 썼으니까 돌과 어떤 연유가 있는 것 같지만 돌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냇물이 급하게 굽이쳐 돌아나가는 통에 땅이 뾰죽하게 튀어나고 곶이 (串)가 된 곳을 「냇물이 돌아가는 곶이」라 해서 「돌꽂이」라 불렀다. 이것을 한자로 전용(轉用)하여 「석관(石串)」이라 한 것이다.

이렇게 전국의 모든 땅이름을 한자로 전용하는 과정에서 왜곡되고 그 뒤에 일제가 덧붙여서 왜색지명으로 개악(改惡)하는 바람에 뿌리없는 얼빠진 땅이름이 된 것이 태반이라니 놀랄 일이 아닌가.
모든 공문서나 호적 등·초본 또는 거리의 간판, 상호, 각종 안내판 모두가 한글로 표기하는 한글시대이니 법정·행정지명과 역(驛)이름도 될 수 있는 대로 우리 토박이 이름으로 한글화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유래나 뜻도 알아보기 힘든 「가좌역」이 무엇인가. 값싸기로 유명한 모래내시장이 길 하나 사이로 역 앞에 가로놓여 있는데도 굳이 「가좌」를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이 세상 온 시민이 다 잘 알고 계속 부르고 있는 정감 어린 「모래내」로 역이름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좋을까.
이러한 토박이 땅이름에는 우리의 역사성과 문화적 향토성이 내재되어 있어서 전통문화와 순수한 우리말을 찾을 수 있고 뿌리사상과 신토불이의 정서가 간직되어 있다.

본디 모래내의 물줄기는 서울의 기상(氣像)인 북한산에서 발원하여 세검정 여울을 감돌아 홍은(弘恩)·홍제(弘濟)골로 흘러내리며 북악산·인왕산·안산 및 백련산의 물을 모아 모래내 지역의 논밭을 축여 주며 한강으로 유입했었다.
요즘에는 냇가 주변의 논밭이란 찾아볼 수도 없이 소란스런 시가지로 변했지만, 한강에 합류지점도 하류의 농토 수해방지를 위해 인공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현재 난지도 옆에서 불광천(佛光川)과 합류하자마자 한강으로 흘러들고 있으나, 그 예전에는 모래내 철교를 지난 후 합정·망원동 방향으로 흘렀었다.

그것을 일제시대 조선총독부가 1923년의 「경성토목사업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성산(城山)의 능선허리(현 마포구청 앞)를 잘라서 모래내를 일직선으로 뽑아 한강으로 직류케 한 것이다(이 작업은 1925년 전후해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다음호에 계속>

ⓒ 著者 우 원 상
서대문사람들 카카오톡채널
 

회사소개 이용약관 개인정보보호정책 광고안내 구독안내
서대문사람들신문사/발행인 정정호  esdmnews.com Copyrightⓒ 2006   All rights reserved.
서울 서대문구 성산로7안길 38 B동 301호/정기간행물 등록번호 서울다-3012/등록일자 1993.6.8 Tel: 02) 337-8880 Fax: 02) 337-88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