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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7월 25일 (수) 18:10 [제 398 호]
홍제천의 봄(39) / 홍제동의 어원을 찾아서

홍익인간 뜻 부합되는 역사깊은 고장
홍제를 제세로, 다시 홍익인간으로 승화해야
△著者 우 원 상
△옛 홍제원은 땅이름만 남긴채 사라지고 홍제원터 였음을 알리는 유래비만이 의주로 한켠을 지키고 있다.

조선시대 공무여행자에게 편의를 제공했던 관영여객사(官營旅客舍)인 홍제원(弘濟院)이 있던 지역을 오늘날 홍제동이라 일컫는다. 그 홍제원은 독립문에서 무악재를 넘어 내려가다 오른편(동편)에 위치(홍제동 131번지)했다.

서북대륙으로 통하는 의주로변의 첫 객사이기에 서북지방을 왕래하던 요직관원(要職官員)과 대륙(중국)을 오가던 특사(特使) 일행이 이용했고, 또한 중국에서 파견된 사절(使節)들은 특출한 귀빈 투숙객이었다. 이 곳에서 여장을 풀고 도성으로 드는 준비와 예복단장을 하던 중요한 객사였다.

한성 주변에 홍제원을 비롯해 인덕원(仁德院), 광혜원(廣惠院), 보제원(普濟院) 등 도합 네 원이 있었는데, 모두 관영 여관 또는 의료원의 구실도 한 사회복지(보건)기구에 준했다고 본다. 특히 광혜원은 고종 22년(1885) 최초의 서양의학 의료기관으로 ‘왕립 광혜원’이라 칭했다가 제중원(濟衆院)으로 개칭했다. 이것이 세브란스병원의 전신(前身)이 됐다.

홍제지역을 일제시대만 해도 일반 민초들은 리ㆍ동을 붙이지 않고 그냥 「홍제원」이라 불렀다.
홍제동은 의주로(義州路)를 간선으로 하고, 세검정으로 통하는 도로를 곁들여서 인왕산(338m)과 안산(296m)을 배경으로 홍제천을 앞에 두르고, 백련산(216m)을 마주보며 아늑함을 간직한 산간풍치 지역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홍제천을 경계로 해 홍제동 방면은 한성부 북방 연은방(延恩坊)에 속했다가 일제하에서는 경기도 고양군 은평면 홍제내리라 명명했었다. 광복 후에 다시 서울시로 편입돼 현재는 서대문구에 속하며 4개동(홍제1~4동)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 홍제동 골짜기마다 향토성이 깃든 옛 이름을 들자면 절골, 안말, 간디골(가운데)을 비롯해 우물골, 외상골(외진곳), 불당골(탑골), 봉화뚝마을, 거능골(화장터, 무덤곳), 무신골, 마루텃골, 지러넘어고개(지름이고개~백련사 가는길), 서석게다리(홍제교), 모래내(홍제천)…. 이 외에도 더 주워 섬길 수 있겠지만 하나같이 옛 토박이 땅이름들로 향토문화적인 정서가 듬뿍 서려 있어 훈훈한 정감이 돈다.


특히, 「서석게다리」는 홍제동에서 녹번고개로 넘어가기 위해 건너던 홍제천에 놓였던 홍제교를 민초들이 부르던 이름인데 너무 오래되어 모래에 묻혀 있던 역사적인 돌다리 이름이다.
그 서석게다리의 석재(石材)가 너무 좋아 경복궁 중건시(1865년)에 석재로 사용하기 위해 파내어 갔다. 이를 주민들이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한다.

홍제원 너머 서석게다리,
여러 천년 묻혔더니
경복궁 이룩시에
세상 구경 다시했네

이런 정서가 이곳 뿐이랴? 전국 방방곡곡 어디엔들 없겠는가! 한때 홍제동 하면 화장터로 인상이 찍힌 곳이었다. 일제때인1929년, 시립장제장(市立葬薺場)을 이 곳(현 고은초등학교자리)으로 옮겨 1970년까지 40여년간이나 정착해 있었기 때문이다.(현재는 경기도 고양시 벽제동으로 이전되어 있다)

이 곳의 역사적 유적은 옛 불당골(탑골∼현 인왕초등학교와 인왕시장 사이)에 사현사(沙峴寺∼고려 정종 11년(1045)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라는 절터에 5층 석탑(높이 3.5m)만이 남아 있었으나, 보물 제166호로 지정돼 경복궁 뜰로 옮겨 「홍제동 5층석탑」이라 부른다.

홍제천에 얽힌 역사적 애환과 골골이 전해오는 설화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홍제동이 새 천년 새 세기를 어떻게 대처 발전해 나가느냐에 있다. 홍제라는 이름 자체가 크게(널리) 세상을 건진다는 제세(濟世)와 뜻을 같이 한다. 더 나아가 우리 민족 이념인 홍익인간에 부합되는 것이다. 이 홍익인간 이념을 단기 4282년(1949)에 제정한 교육법의 제1조에 교육이념으로 채택하면서 그 동기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홍익인간은 우리나라 건국 이념이기는 하나 결코 편협하고 고루한 민족주의 이념 표현이 아니라 인류공영이라는 뜻으로, 민주주의 기본정신과 완전히 부합되는 것이다. 홍익인간은 민족정신의 정수이며 일면 기독교 박애정신, 유교의 인의, 불교의 자비심과도 상통되는 전 인류의 이상향(理想鄕)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새 천년 새 세기를 맞아 「홍제」를 「제세(濟世)」로 다시 「홍익인간」으로 승화시켜 독립문화를 통일문화로 완성해야 한다.
 -미래는 미리 예비하는 자에게 발전적으로 전개된다.-

ⓒ 著者 우 원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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