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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홍제천의 봄
2007년 04월 16일 (월) 11:45 [제 389 호]
홍제천의 봄(30)/능안골, 애오개, 굴레방 다리민초 가슴속 자리

소도 굴레 벗고 쉬던 곳, ‘굴레방다리’
오른팔 복주산, 왼팔 아현능선 품안 동네 북아현
△우 원 상

북아현동은 동북쪽에 병풍처럼 옹위하고 있는 금화산(金華山)의 서기를 받아 살기 좋은 고장으로 전해 왔다.
금화산은 안산의 지맥(支脈)으로 풍치좋고 산 모습이 아늑하여 그 이름도 화려한 금화산이라 부른다. 또 둥그스름하게 누운 모양이 부드러워 둥그재(圓峴)라고도 한다.
이 금화산의 오른팔이 복주산(福主山)이요, 왼팔이 아현능선(阿峴稜線)이라 그 품안에 감싸인 동리가 북아현이다.


하나의 아현동에서 북아현동이 갈라진 것은 일제시 단기 4277년(1944) 10월에 서대문구의 일부를 분할하여 마포구역소가 설치되면서 아현정(町)과 북아현정으로 구분, 아현정은 마포구 행정구역이 되었다.
광복 후 1946년에 정(町)을 동(洞)으로 복원시켰으며 다시 1955년 4월18일에 1,2,3동으로 나뉘어졌다.


그 중에서도 금화산 밑에 깊숙이 자리잡은 동네가 아현3동으로 능안골과 복주산골 지역을 차지한다. 경의선을 경계로 철로 남쪽의 우측(대현방면 지역)에 북아현2동과 좌측(애오개방면 지역)에 북아현1동을 앞에 모시고 멀리 마포구 아현동을 내다보고 있다.
능안골은 일제시에도 한식 기와집이 즐비하게 들어서서 여유있는 동리로 비춰졌었다. 능안골 일대는 공기 좋고 물 좋고 조용해서 공부하기 좋은 곳이었다.


여기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연세대와 이화여대 학생들의 자취생활 터전으로 「연희장」이란 별명이 생길 정도였다. 능안골에서 서대문 개명앞(서대문 네거리를 개명앞이라 했다)으로 넘어가는 금화장고개도 문안으로 들어가는 지름고개로 이름난 곳이었다.
아현3동(능안골)은 경의선 철도 한 선이 지나면서 두 개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서울역에서 출발한 열차가 좌측 터널로 들어와서 우측터널(신촌역)로 빠져 나가는데 상·하행(上·下行)시마다 서로 역순으로 교차한다. 예전에 순환선(서울∼신촌∼서강∼공덕∼용산∼서울)이 운행되었을때는 능안 간이역도 있었다.


이 능안골(능안말, 능골)은 조선조 21대 영조(1724∼1776) 때 당파싸움에 말려 애꿎게도 뒤주 속에 갇혀 질식사한 비운의 왕자인 사도세자(思悼世子∼蔣祖 1735∼1762)의 아들 위정 효장세손(孝章世孫)이 두  살에 죽자(1764년 5월) 이 곳에 안장하고 의령원(懿寧園)이라 이름한 애기능에서 유래한다. 「능의 안동네」라는 뜻이다.

사도세자의 아들 효장세손 안장한 의령원
추계예대 뒷뜰에 애기능터만 남아있어

현재, 이 애기능(의령원)은 1949년 4월에 서삼능(西三陵∼현 서오능)으로 이장하였으며, 그 애기능자리 일대에는 추계예술대학과 중앙여자중고등학교가 들어섰고, 교사 후정에 애기능터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북아현 서북편에 자리한 복주산은 귀인이 놀던 산이란 뜻으로 그 언저리에 복주산골 복주우물이 있는데, 물맛 좋고 피부병에 효험이 있다 하여 장안에서도 소문난 우물이었다. 지금도 우물자리를 옮긴 채 그 이름이 남아있다.


북아현 하면 능안골과 애오개와 굴레방다리가 가장 널리 민초들 가슴속에 자리잡혀 있을 뿐 아니라 애오개길과 굴레방다리골은 일찍부터 상업이 발달된 지역이다. 금화산에서 발원한 능안골 물이 모여 녹계천(綠溪川∼일명 놋개천)을 이루고 굴레방다리로 내려와서 한숨 돌리며 큰 고개 쪽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를 아우러 흐르면서 아현동 일대의 물을 몰아서 공덕동을 지나 마포(삼개)로 나가 한강으로 합류했었다.


이 녹계천(놋개천) 하류 아현동에 선통물천(先通物川) 장터가 섰었는데,  마포항에 물건이 많이 들어오면 작은 배로 나누어 운반해 이 장터에 먼저 풀었기 때문에 물건이 먼저 유통하는 하천이라 해서 「선통물천」이란 별명이 붙었다.


그러나 이 선통물천은 일제 때 마포강(한강)에 뚝을 쌓으면서 장마철에 마포의 범람을 막기 위해 지금의 애오개 전철역 못미처에서 서쪽방향으로 물줄기(내)를 돌려 쌍룡산(일명 개바위산) 밑을 뚫어(터널을 만들어) 염리동으로 나가게 하고, 계속 일직선으로 숭문중고교 앞을 지나 노고산 아래 대흥동을 거쳐 서강대학 옆으로 빠져 서강으로 흘러나가게 하고, 그 터널 이름을 「선통물천터널」이라 명명했다.


지금은 내 전체가 복개되어 하천의 양상을 모르지만, 선통물천터널 입구에는 먼저 선(先)자를 착할 선(善)자로 바꾸어 음각(陰刻)되어 있다. 이것은 냇물이 원활하게 잘 소통하라는 뜻으로 「善通物川」이라 한 것이다.
참으로 재미있는 발상이었다.


이 하천의 물줄기를 돌린 공사 시기가 언제인지, 확실하게는 알 수 없으나, 일제시대 경성토목사업지(京城土木事業誌)에 「1923년부터 5개년 계획사업으로 시행 중」이라고만 나타나 있는 것으로 추리한다면 1925년 전후해 완공되었을 것이다.
애오개 길(구길)을 따라 큰고개 방향으로 가노라면 능안에서 내려오는 녹계천 위에 놓은 굴레방다리를 건너게 된다.


이 굴레방다리는 이름도 낭만적이지만 옛부터 이 고장 정서를 간직한 쉼터였다.
다리 근처에 소굴레를 만드는 대장간이 있었는데, 큰고개(대현)나 애오개를 넘기 위해 이곳에서 소나 말에게 물도 먹이고 굴레를 갈아 주며 쉬었다. 그래서 붙여진 다리 이름이다.
「굴레」란, 소나 말의 목에서 고삐를 걸쳐 얽어매는 줄 또는 재갈을 말한다. 그래서 굴레방다리를 한자로 「늑교(勒橋)」라 쓴다.


풍수지리설에 의한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다.
큰 소가 길마를 무악산(안산∼일명 길마재)에다 벗어놓고 굴레는 굴레방다리에 풀어놓은 뒤 큰고개를 넘어 서강으로 내려가서 와우산(臥牛山∼소가 누운 산이라는 뜻)에 누웠다 해서 굴레방다리라 부르게 됐다 한다.


역시 굴레방다리는 쉬어갈 만한 곳이군, 그래서 아현 전철역도 이 곳에 머무르지 않았는가?
이왕이면 「굴레방다리역」이라고 토박이 이름을 붙였으면 안성마춤인 것을…. 
버스 정류장은 여지껏 「굴레방다리」라고 오래동안 불러왔다.

ⓒ 글쓴이 우 원 상
seodaemun@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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