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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홍제천의 봄 > 쉬어가는 수필
2012년 07월 09일 (월) 18:05 [제 550 호]
그대 가는 길이 무겁거든

죽을때 가지고 가는 것은 다름아닌 업보
물질 탐욕, 조금씩 마음 비워야

△설산스님
현대를 웰빙 시대라고 하는군요. 삶의 축이 잘 먹고 건강하게 잘 사는 데에 맞춰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웰빙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웰빙 관련 직어도 다양하게 생겨나고 있습니다. 웰빙, 참으로 좋은 말입니다. 한 번 밖에 없는 인생인데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살다 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현대인들의 현망한 삶이겠지요.

그러나 그 또한 집착을 통해서만 가능하지요. 집착은 지나친 욕심에서 비롯됩니다. 남보다 건강하게, 남보다 잘 먹고, 남보다 오래 살려는 욕심은 남들과의 경쟁을 부추깁니다. 거기에는 여러가지 문제도 따릅니다. 그리고 우리는 결국 늙고 죽어야 한다는 운명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천년 만년 세상에 말뚝을 박고 살려는 듯이 재물과 명예와 인연에 집착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프고 슬퍼집니다. 당장 내일 일도 알지 못하면서 무슨 영욕을 그리 간직하자고 아둥바둥 사는지….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저는 한스럽게 죽은 이들의 영혼을 달래고 극락으로 인도하기도 합니다. 특히 결혼하지 못한 영혼을 위해 20여년 동안 500여 쌍의 영혼 결혼식은 물론 천도제까지 올려주었지요.
이런 일을 하면서 「사람은 죽어 저승에 갈 때 무엇을 가지고 가는가?」하는 생각을 수없이 합니다. 알몸으로 왔다가 알몸으로 가는 것이 우리의 당연한 이치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버리고 가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 발을 디디면서 베푼 공덕과 업보는 그대로 다음 생에 짊어지고 가야 합니다. 알몸이되 알몸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불교 경전 중 하나인 <잡아함경>에는 다음과 같은 비유가 나옵니다.
한 남자가 네 명의 아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첫째 부인에 대한 사랑은 각별해서 먹고 자는 것을 늘 같이 햇습니다. 둘째 부인은 첫째 부인보다는 덜하지만 깨어있을 때는 곁을 떠나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셋째 부인은 이따금 생각날 때만 찾아갔고, 넷째 부인은 다른 부인들보다 열심히 남편의 시중을 들었지만 남편은 거들떠 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남편이 먼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첫 째 부인에게 같이 가 줄 것을 요청했지요. 하지만 첫째 부인은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둘째 부인 역시 마찬가지였지요.. 둘째 부인은 오히려 이렇게 반문했습니다.
『당신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첫째 부인도 거절하는 마당에 제가 무엇 때문에 따라가야 하나요?』
결국 셋째 부인에게 부탁해야 했습니다. 그러자 셋째 부인은 한평생 크고 작은 신세를 많이 졌으니 마을 어귀까지는 같이 가 드릴 수 있노라고 했습니다.
남편에게 먼 길에 자신을 도와줄 아내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베푼 세 부인이 모두 그와의 동행을 외면했습니다.

결국 염치없게도 그간 거들떠 보지 않은 넷째 부인에게요청해야 만 했습니다. 그러자 넷째 부인은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가겠습니다』

남편은 놀랍고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 그토록 외면했음에도 선뜻 같이 가겠다는 말에 놀랐고, 자신에 대해 아낌없는 사랑에 고마웠습니다. 그 동안 아무런 사랑도 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꾸짖기만 한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여기서 남편이 떠나는 길은 죽음의 길을 말합니다. 첫째 부인은 우리가 가장 아끼는 육신이지요. 우리는 육신을 한 번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육신이 원하면 무엇이든지 먹여주고, 즐겁게 해주고, 아프면 치료까지 해 줍니다. 그럼에도 육신은 마지막 길을 같이 하지 않습니다.

둘재 부인은 명예와 재물을 의미합니다. 명예와 재물을 위해 모든 정성을 기울였지만, 차가운 시선은 육신이나 마찬가지이지요. 셋째 부인은 가족과 친척, 친구를 말합니다. 우리가 죽으면 이들이 묘지까지 배웅해 줍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억은 그렇게 길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넷째 부인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바로 업입니다. 마지막에 무엇을 가지고 가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육체나 명예, 재물은 죽음 앞에서는 부질없습니다. 그러니 알몸으로 와서 알몸으로 가는 인생이라고 말하는 것이겠지요. 하기에 사람으로 태어나 무슨 업보를 가지고 가느냐가 더없이 중요합니다.

이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대답은 분명해 졌습니다. 이기주의와 물질, 탐욕에 병든 우리가 지금 무엇보다 먼저 서두를 일은 자신이 가진 것을 하나씩 버리는 것입니다.
ⓒ 설산스님(백련자비원·사암연합회장)
seodaemun@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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