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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홍제천의 봄 > 쉬어가는 수필
2011년 11월 25일 (금) 18:07 [제 530 호]
그가 세상 속으로 가듯이

어려운 불교이론 염불이나 노래, 춤으로 바꿔 포교원효의 배려와 업적매료
그가 걸어온 길 같은모습으로 걸어갈 것

△설산스님

제가 존경하는 스님은 원효대사입니다. 출가 전에도 원효라는 인물에 매료되었지만, 출가 후에도 그의 사상과 철학은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250여권이나 된다는 그의 방대한 저술속에 살아 숨쉬는 깊은 사상과 그의 행적은 제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원효는 산속에서 세간의 거리로 나와 세상 사람들을 품에 안았습니다. 이는 세상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해서였는데, 그런 그의 모습이 특히 마음에 끌렸습니다. 큰 스님으로서 얼마든지 고생하지 않고도 대접받을 수 있을 그가 그 자리를 뒤로하고 세상으로 나왔다는 것은 여간한 깨달음이 아니면 힘든 일이지요.
그는 스스로를 소성 거사 또는 복성 거사라고 칭했습니다. 거사 중에서도 가장 낮은 데에 있는 못난 거사라는 의미이지요.

이규보의 <소성거사찬>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머리를 밀면 그가 바로 원효대사요. 머리를 길러 두건을 쓰면 그가 바로 소성거사로다』
이처럼 원효는 세상 사람들과 치해지기 위해 머리카락을 기르고 두건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의 행색은 널리 퍼졌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그를 따르고 좋아했습니다. 그는 그런 사람들에게 한없는 자비를 베풀고 베풀었습니다. 조롱박으로 악기를 만들어 두드리면서 시장바닥에서 장사꾼들과 어울려 춤을 추기도 했으며, 광대들과 어울려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는 그 조롱박을 무애(無碍)라고 했습니다. 무애는 온갖 장애와 세속적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 진정 자유로운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의 춤과 노래는 바로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해탈의 경지, 대자유인이 되려는 의지의 표현이었지요.
깨달음은 더러운 세상 속에서도 가능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수행에만 만족하지 않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 그 수행의 결실을 세상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적극적인 실천을 추구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수행의 자세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팔만사천의 법문을 외고 의미를 터득하는 것보다 한줄의 경문이나마 몸소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습니다.

세상을 향해 스스럼없이 다가서는 그의 모습은 해탈의 자세,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귀족들이나 읽던 불경을 버리고, 시장바닥에서 노래를 지어 춤을 추고 다닌 그의 모습은 당시의 사람들에게 살아있는 부처나 다름없었을 테지요.
원효는 대승불교를 부르짖었습니다. 소승불교가 자기 자신의 존재만이 청정해지는 것으로 충분하다면, 대승 불교는 중생의 구제를 우선으로 삼고, 세상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통감하며, 불교의 귀족화와 형식화에 저항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만났습니다. 백정, 기생은 물론 장사치뿐 아니라 시정 잡배들도 그를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어려운 이론을 염불이나 노래, 춤으로 바꾸어 세상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교화로 하여 가난하고 우매한 사람들까지도 부처의 이름과 깨달음의 방법을 알게 되었고, 「나무아미타불」을 입에 올릴 수 있었지요. 이것은 불교에 있어서 혁명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의 이러한 업적에 매료되었고, 하여 그를 흠모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다른 분들의 배려와 권유도 있었지만, 제가 자연스럽게 세상 속으로 뛰어는 데에는 그의 영향이 가장 컸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가 그렇듯이 저 역시 결코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를 만나본 사람도 아닌데 지나치게 그에게 빠져있는 제 모습이 과장된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의 사상과 철학이 그만큼 제게 향기롭게 다가왔기 때문일테지요. 향기란 반드시 전해지기 마련입니다. 1400여년이라는 격세지감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품 속에서 묻어나오는 향기는 여전합니다.
제가 승려로서 입적한 뒤에 또 그만큼의 시간이 흐른다면 누가 제삶의 흔적을 어루만져 주기라도 할까요? 이 물음에는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다만 그를 흠모하며 그가 걸어온 길을 같은 모습으로 걸어가려고 노력할 따름입니다.

그 길이 옳은 길이라고 여기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일에 조금의 후회도 없습니다. 다만 그 길을 묵묵히 걸어 갈 뿐이지요. 원효가 자신이 옳다고 여긴 길을 묵묵히 걸어간 것처럼 말입니다.

ⓒ 설산스님(백련자비원·사암연합회장)
seodaemun@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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