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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6월 22일 (금) 12:21 [제 395 호]
홍제천의 봄(36) / 연희동의 유래

조선 초 연희궁터 일부 남아 연희동으로
세종 7년 이름 지어진 후 ‘효성깃든 궁’으로 전해져
△著者 우 원 상

연희동!
조선 초기 이궁(離宮)의 하나인 연희궁(衍喜宮~후일에 延禧宮으로 바뀜)에서 연유해 이 지역을 경기북부 연희방(延禧坊, 후에 연희면)이라 이름지어(지금의 연희동을 중심으로 아현, 증산, 수색, 가좌, 합정, 신촌지구까지) 제법 넓은 지역을 감싸안고 내려오다가 대부분 다른 구역으로 떼어 주고 이제는 극히 작은 지역이지만 본고장에 남아 연희동이라 불리우며 안착(安着)하고 있다.

세월 따라 옛 궁궐은 간데없고, 어렴풋이나마 그 터전이 있었다는 지역에 연세대학이란 웅장한 상아탑이 세워져 이 고장을 수호하기에 연희동은 외롭지 않다.
영욕으로 점철(點綴)된 옛 연희궁을 조선 초에는 서이궁(西離宮)이라 하여 제2대 정종(定宗 1398~1400)이 태종에게 선위(禪位)한 뒤 이곳에 머물렀다 한다.

세종(世宗)이 부왕 태종(太宗 1400~1418)을 위해 세종 2년(1420)에 중건했으며, 세종 7년(1425)에 「연희궁」이라 명명하고 세종 자신도 자주들렀었다. 이래서 세종의 효성이 깃든 궁이라고 오늘에 전해 온다. 한편 궁내에 누에를 키우는 잠실도회(蠶室都會)를 설치했으며, 세조(世祖~1455 ~1468)도 서잠실(西蠶室)이라 부르며 양잠(養蠶)을 독려했다.
성종(成宗 1469~1494) 때에는 그 부근에 뽕나무를 많이 증식시켰다. 이러하던 성역이 연산군 11년(1505)에 연희궁을 개축해 연회장(宴會場)으로 꾸며 놀아나면서 궁으로서의 품위가 땅에 떨어졌다.
그래도 영조(英祖 1724~1776) 때에 와서 연희궁의 연(衍)자를 연(延)자로 고친 것을 보면 영조대 까지도 궁의 면모는 남아 있었다고 본다. 그 후 어떻게 없어졌는지 모르나 연세대학교 울 안이라고 짐작하지만 1900년초의 「연희궁 터」라는 사진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그 사진 속의 배경이 지금의 위치를 찍어서 바로 여기라고 지목할 수 없음이 아쉬울 뿐이다.

연희동의 동쪽 지경은 안산에서 내려온 능선을 타고 연세대학교와 접했고 서쪽은 홍제천을 놓고 남가좌동과 홍은3동에 닿았으며, 홍제천을 따라 고가로 달리는 내부순환 고가도로가 등장한지 몇 해 되었다.
남쪽은 성산대로가 연희로와 교차하면서 경의선 철도와 평행선을 그으며 마포구 연남동과 경계를 이루고, 북은 안산(296m)을 상징으로 받들고 홍제1,2동과 접했다. 대체적으로 안산에서 뻗어내린 두 능선을 끼고 뿌리박은 산수 좋은 쾌적한 곳이다. 행정상 연희 1·2·3동으로 나누어져 있다.
옛 정서깊은 몇 마을만 뽑아본다.

# 궁굴
지금의 연희궁 앞뜰 마을이라 해서 궁뜰, 궁동 또는 정자가 있어 정자말이라고도 하고, 숙종(1674~1720)의 빈(嬪)이며 경종(1720~1724)의 어머니인 장희빈의 생가(친정집)가 있어서 유명했다.(오늘의 연희1동 지역에 해당된다∼궁골)

# 큰말
현재 연희3동 아랫말로 연세대학과 접한 연희동 중심마을이며 가장 큰 자연마을이었다.

# 윗말
오늘의 연희2동 위쪽 마을로, 뒷산에서 흐르는 냇물이 많아 농토경작이 좋았던 곳. 큰말 위쪽이라 붙여진 마을이름.

# 한달고개
연희로를 따라 연희동 삼거리에서 서대문구청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길고 험해서 생긴 고개이름.

# 응달말(陰月里)
서대문구청 앞길 건너편 홍제천변 홍연시장 주변으로 안산의 응달로 인해 부르게 된 그늘진 마을. 그 자연스런 이름이 참 좋다.

# 밤고개
연희고지 초입에 건립돼있는 「해병대 104고지 전적비」에서 동북방향, 곧 연희1동의 서연중학교에서 연희시범아파트 옆을 거쳐 모래내로 넘어가는 고개 일원에 밤나무가 많아 「밤나무고개」라 하고 이를 줄여 「밤고개」라고 불렀었다. 그 「밤」이 변음(變音)되어 「방고개」라고도 불리워지기도 했다.

# 대궐재 고개
연희삼거리에서 남가좌동(홍남교)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이름하여 「대궐재」라 불렀으며 장희빈의 생가(生家)인 「대궐같이 큰 집」으로 넘어오는 고개라는 뜻으로 불리워졌다.
이 고개는 지금 육안으로 보아도 짐작이 가듯 굉장히 높고 가파른 고개였다. 현상태는 산 능선을 자르고 많이 깎아 내려 평지 도로처럼 넓혀 놓고 그 고개 양벽에 다리를 걸쳐놓아 연희1·2동의 산동네가 상호 왕래토록 편의제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새주소사업이 진행되면서 대궐재고개가 밤고개로 바뀌어 불려지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 연희고지(104고지)

6·25사변 당시 서울 수복을 위한 최대의 격전지로서 유명하다. 1950년 9월 21일부터 24일까지 4일간 치열한 전투에서 피아쌍방의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안산에서 능선을 타고 내려온 연희고지의 끝머리 요새지 104고지 숲속에 「해병대 104고지전적비(海兵隊 一0四 高地戰蹟碑)」가 서 있다. 궁동산이라고도 부른다.
나라와 서울 수복을 위해 산화한 저 젊은 넋들이 달래나질까나.
겨레의 아픔이여! 고이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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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著者 우 원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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