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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홍제천의 봄
2007년 03월 13일 (화) 15:19 [제 386 호]
홍제천의 봄(27)/안산에서 가장 깊은 마을 봉원동(새절 아래말)

한때 경기도 편입됐던 안산의 가장 깊은 마을
연세대∼봉원동 넘어가는 벌고개 등 지명 현존
△著者 우 원 상

봉원동은 서울에서도 몇 군데 안 되는 산수좋은 풍치지구 안에 들어있는 아담한 동네의 하나다. 또 안산(鞍山)의 남쪽 기슭 깊은 골짜기에 자리한 봉원사(奉元寺)를 기점으로 하는 조용한 마을이기도 하다.
동네이름 자체도 봉원사에서 유래되어 우리 토박이 말로는 「새절 아래말」이라고 불렀다.
조선시대에는 한성부 북부 연희방(延禧坊) 봉원동이라 했다가 일제하인 단기 4247년(1914)에 경기도에 편입되었으며, 1926년에는 다시 경성부 봉원정(町)이라 했다. 광복후 봉원동으로 복귀하여 현재 서대문구에 속해 행정구역상 대신동에서 관할하고 있다.
아직도 안산에서 제일 깊은 골로 남아 있는 곳이 봉원동이며 이 곳을 비롯한 약수터와 생활체육·편의시설이 안산에만도 수십 곳에 산재해 있으며, 하루에 수천명의 주민이 이용하고 있는 건강을 위한 휴식산간이다.
봉원사로 인해 유서깊기도 하지만 역사적으로 이태조가 신도읍지를 물색할 때에 하륜(河崙) 등이 무악(毋岳∼안산)의 남쪽지역을 새로운 도읍지로 적극 추천한 명당터의 일부라는 데 큰 비중이 있다.


지금의 신촌동(연세대 울안팎)에 있던 연희궁(서이궁∼西離宮)과 서잠실(西蠶室), 그리고 수경원(綬慶園∼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 이씨의 무덤)을 함께 이웃한 명승지였다.
예전에 대얏골(大野洞∼대꿀=연세대 울안지역)에서 봉원사로 넘어가는 고개를 벌고개(버리고개)라 하였는데 그 고개가 「수경원」의 주룡(主龍) 맥이므로 사람의 왕래가 많으면 등성이가 낮아져 맥이 끊어질 염려가 있어 넘나듦을 금지했다 한다. 그래서 어기면 벌을 받는다고 벌고개(罰峴)라고도 불렀다는 것이다.
일반인은 봉원천 물길을 쫓아 오르내렸다.


「봉원사」는 한국불교 태고종(太古宗)의 총본산이다. 단기 3222년(889) 신라 진성여왕(3년) 때 국사도선(國師道詵)이 창건하고 처음에 반야사(般若寺)라 하였다(현 연세대 터에 자리잡음). 고려 공민왕 때에 중건하고 조선 태조 5년(1396)에 왕의 초상화를 모신 원당(願堂) 반야암을 지었는데, 불교 탄압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 후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지인(智仁)이 중건하고 선조, 인조, 영조 때에는 반야암이 왕명으로 보호를 받았다.

신라 진성왕(3년)때 국사도선이 창건, 반야사로 명명
영조 24년 건축부지 하사받아 이건, 영조로부터 「봉원사」 현판 받아


영조 24년(1748)에 왕의 건축부지 하사로 현재의 자리로 이건(移建)하여 영조로부터 「봉원사」라는 현판을 받아 이 때부터 봉원사라 불렀다. 이 때부터 속칭 새절이라고 부르게 됐다.
사내의 대웅전(大雄殿)은 예불 중심의 공간으로, 조선 후기 사찰의 특징을 대변하는 실물로서 법당안에 있는 범종은 충남 덕산 가야사에 있던 것이며, 「대방」은 염불당으로서 본래 마포구 옛 공덕리(염리동∼현 동도중학교 자리)에 있던 흥선대원군의 별장인 아소정(我笑亭) 본채 건물을 이전한 것이다.


삼천불전은 6·25 사변 중 소실된 것을 1988년부터 9년여에 걸쳐 복원한 것으로, 단일 목조건물로서는 국내에서 가장 큰 것(210평)으로 못을 전혀 사용치 않은 특징이 있다.
고종 21년(1884)에는 갑신정변(甲申政變)의 주동 인물이었던 김옥균(金玉均)·서광범(徐光範)·박영효(朴泳孝)·서재필(徐載弼) 등 개화파의 젊은이들이 개화승려인 이동인(李東仁)의 지도로 개화사상에 불을 당겨 정변을 일으키게 한 요람지가 되었다.


봉원사에 주요한 유물이 있으니, 도선스님의 반야암 편액, 이광사(李匡師)의 대웅전 편액, 정도전(鄭道傳)의 명부액 편액, 김정희(金正喜)의 청련시경(淸連詩境), 산호벽루(珊瑚碧樓), 이완용(李完用)의 지장대성위신력(地藏大聖威信力), 청나라 옹방강(翁方綱)의 무량수각 편액 등과 장승업(張乘業)의 신선도 십폭병풍 등이다.
경내에는 서울시의 보호수 제67호, 69호, 70호로 지정된 수령 500년의 괴목이 서울시의 보호수로 보존되고 있으며, 또 이 절의 긍지인 단청기능 보유자 이만봉(李萬奉∼무형문화재 제48호)과 범패의 기능보유자인 박송암(朴松巖∼무형문화재 제50호)이 좌정하고 있으시다.
역시 봉원동은 깊은 산 속에 감춰진 역사깊은 비원(秘園)이었다.

 

흥선대원군의 별장 아소정(我笑亭)
옛 공덕리 뒷산(쌍룡산 일명 개바위산) 자락 나무 숲이 우거진 곳에 대원군의 별장 아소정이 있었다. 현 마포구(옛 서대문구) 염리동 소재 동도중고등학교 구내에 자리했었다. 정자라기보다는 동서로 앉힌 장방형(長方形)으로 궁전처럼 크고 담이 높았다.
서편에는 대원군이 실정(失政) 이후에 낚시로 소일했다는 아주 큰 정방형의 연못이 있어 연꽃철에는 장관을 이루었다. 풍치지구로 학교들은 곧잘 이 곳에 와서 사생대회를 열기도 했다. 별장 담장 밖 동북쪽에 물 좋은 우물이 있어 염리동 사람들이 많이 길어가기도 했다.

대현동, 신촌동이 낳은‘대신동’
대신동 신촌의 늦둥이 동네
동 전체가 교육 기지화, 세브란스 병원 이웃

신촌에서 대신동(大新洞)은 가장 어린 생소한 동네 이름이다.
단기 4295년(1962)에 대현동(大峴洞∼큰고개골)과 신촌동(新村洞∼새터말)의 일부지역을 분할해서 두 동명의 머리글자를 따라 대신동이라 명명함으로써 새로운 동이 하나 더 생겨났기 때문이다. 우리 토박이 땅이름으로 「큰새말」이라고나 할까!
이렇게 새로 생긴 동이지만 대현·신촌·봉원동을 합하여 행정구역상 대신동 사무소에서 일괄하고 있는 것이 새삼 돋보인다. 새 동이 바로 중심(센터)이 됐구나 싶다.
이 대신동은 금화터널 남쪽에 위치하며 성산로 좌우지역을 차지하고 봉원·신촌·대현의 세 동이 둘러싸고 있다.


대신동 중심가를 지나는 성산로는 그 밑에 봉원천(奉元川)이 복개되어 흐르고 있음을 상기하면 옛날의 맑은 냇물과 그 주변의 정서가 추억으로 되살아난다.
연세대학과 이화대학을 양 옆에 모시고 동네에는 금란여자 중고등학교와 이화여대 부속중고등학교 및 부속초등학교를 안고 이대후문(성산로)건너편 주택가 근방에는 연세대학 어학 연구소가 있을 뿐 아니라 주요 건물도 주택가도 학교문화의 영향권에 속해 있다. 대신동 전체가 교육기지화 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1957년 건립된 세브란스 병원을 이웃하고 있는 것이 이 지역 주민생활에 보이지 않는 큰 안도감을 주고 있다. 이 느낌의 파문은 신촌지역을 훨씬 넘어설 것이다.
금화터널이 개통되기 전에는 안산을 배경으로 공기 맑고 산수 좋고 조용하여 살기 좋고 공부하기 좋은 곳이었다.
그러나, 금화터널이 개통되면서 서울 중심가를 직통 왕래하는 큰 길이 트이고 일산, 금촌, 문산지역과 김포, 강화지구와 영등포 인천 방면으로 시원하게 통하는 쾌적한 도시로 발전했음도 간과(看過)할 수가 없다.
더 나아가 새 즈믄해를 맞아 인류가 하나 되는 홍익인간 이화세계(弘益人間 理化世界)의 이상향을 지향하는 교육의 요람터이고자 한다.

ⓒ 著者 우 원 상
seodaemun@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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